2006년 3월에 남편과 나는 결혼 10년을 축하했다. 주님과 나의 목사님, 그리고 나의 신앙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다시 시작하려는 믿음, 열린 믿음, 주님이 나를 통해 일하도록 기꺼이 허락하고 나를 이용하여 다른 여자들을 격려하고 영감을 주는 데 도움을 주는 믿음.
2004년 4월 28일 나는 말 그대로 정신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날 앰뷸런스의 뒷자리에 올라타면서 나는 살아남지 못할 것을 알았다. 상황이 내게 유리했다. 그냥 포기한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 들어온 절박한 생각이었다. 신은 너와 함께 있지 않아, 작은 목소리가 거짓말을 했다. 네 마음에 욕망을 줄 줄 알았는데 그러나 확실히 이것은 나의 진정한 소망이 아니었다.
왜 울고 있는 거야? 적이 계속 나에게 던진 말이었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나를 조롱할 수 있었을까? 내 고통과 가슴 아픈 가운데 그가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응급실에 누워 있을 때, 나는 내 세계가 파괴되는 것을 느꼈다. 이게 꿈일까요? 정말 남편이 나흘 전에 집에 와서 떠난다고 했나? 나는 막 셋째 아이를 5일 전에 낳았다.
왜 울어?
방금 떠난다고 한 게 아닐까? 이건 꿈일 수밖에 없었어.
니콜이 뭐든.
뭔데? 너 미쳤어?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니, 이것은 성경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너는 단지 8시 이후에 더 이상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결정하지 않는다. 아이도 있고, 책임감도 있어!
니콜이 뭐든. 그 꿈은 악몽이 되었다.
이것이 8개월 동안의 전쟁, 눈물, 기도, 가르침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목적을 배우는 것이다.
이것은 내 이야기 중 하나이다. 내 인생은 증언이고 내가 그것을 공유할 것이라는 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성경은 우리가 증언의 힘에 의해 극복되었다고 말한다.
내 기도는 이 이야기가 단 한 명의 여성만이 다시 숨쉴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수백, 심지어 수천을 돕는다면, 그것은 대단하다. 하지만 내 임무는 고통받는 자, 내가 겪은 일을 겪고 있는 자에게 도달하는 거야 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나에겐 힐링이다. 그래서 미리 읽어주고 또 내가 숨쉬는 것을 도와줘서 고마워.
저 유명한 찬송가에게 하는 말은 이런 식으로 약간은 통한다.
이건 내 이야기야, 이건 내 노래야, 난 하루 종일 내 구세주를 찬양하고 있어.
이건 내 이야기야, 이건 내 노래야, 난 하루 종일 내 구세주를 찬양하고 있어.
교회에 있으면서 어느 정도 바르게 사는 것이 내 집, 결혼, 우리의 삶을 함께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회였다. 야, 내가 틀렸어! 교회를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 훨씬 더 많은 것이 필요하다. 관계를 맺어야 한다. 한 사람만이 주님과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우리 둘 다.
난 결국 출혈로 구급차 뒤에 처박혔어 모든 검사가 끝났을 때 그 진단은 스트레스였다. 응, 아마도 내가 좀 스트레스를 받았나 봐. 남편이 떠나기 전날 밤에 나한테 말했어. 의사는 졸로프트(항우울제)를 처방했지만 나는 의지할 만한 것을 복용하기 시작하기를 거부했다. 나는 그 직후에 내가 다른 약에 의존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서 이 주장을 했다.
그날 밤 이후 남편은 집안을 드나들었다. 그는 여전히 공식적으로 그곳에 있었지만, 몇 달이 지나도록 실제로 그곳에 있지 않았다. 그리고는 발을 내려놓았다.
너는 이 집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애들은 네가 마음대로 드나드는 걸 못 볼 거야. 여기서 자지 말고 일하러 갔다가 다른 여자 집에 가서 자. 내 아들은 14살이고 나는 그가 이것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내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할게, 그냥 있어.
네가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걸 받아들일게, 그냥 있어!
나는 애걸하고 애원하고 싶었다.
날 떠나지 마, 우릴 떠나지 마, 그냥 있어
필사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이 바로 내가 내 결혼, 내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하려고 했던 것이다. 나는 내 집에서 아버지 없이 자랐다. 난 내 아이들을 위해 그런 걸 원하지 않았어. 자고 있거나 사귀거나 다른 사람을 알아가고 싶지 않았다. 내가 결혼했을 때는 평생이었다. 우리는 함께 있어야만 했어. 난 이혼하고 싶지 않았어. 난 내 남편을 원했다. 하지만 그는 나를 원하지 않았다.
결국 얼마나 많은 다른 여성들이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여전히 남아 있을까?
한 연상의 여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나와 공유하며 말했다. “자기야, 가끔은 네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해. 남편은 30년 넘게 바람을 피웠고, 다른 여자가 죽을 때까지 불륜은 끝나지 않았다. 우리 애들은 집에 와서 아버지 차가 모퉁이에 있는 그녀의 집에 주차되어 있다고 말하곤 했다. 그냥 받아들였어. 나는 가족을 위해 그것을 가지고 살았다.
그러나 나는 통계가 될 수 없었다. 나는 그런 일이 계속되도록 허락하는 것보다 나 자신에 대한 존경심이 더 컸다. 나로서는 어려운 일이지만, 나는 그가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것이 그에게 힘을 주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의 앞에서 울지 않겠다고 나 자신에게 다짐했다. 내가 울 때마다 그는 웃곤 했다. (적이 웃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그의 물건들을 집 밖으로 줍도록 시간을 마련했다. 그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그것들을 가지고 창고에 가져간다고 말했다. 나는 전화를 끊었습니다.
가슴이 조여들고, 속이 뒤틀리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무릎이 버클을 걸기 시작했다. 손이 걷잡을 수 없이 떨리고 있었다. 공기가 필요했어 공기를 쐬어야 했다. 그는 실제로 그의 물건들을 가져갔다. 그는 정말 가버렸어!
다른 여자는 없어, 나뿐이야.
내가 미쳤다고 생각해?
니콜이 뭐든.
또 그 말들. 그것이 우리의 대화였다. 한 남자가 자기 가족을 그렇게 걱정하다가 우리가 어떻게 먹었는지 신경 쓰지 않고, 담보 대출금을 어떻게 냈는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아내와 자식들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주님보다도 훨씬 더 나빴다. 처음부터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벅찼다. 그는 내 눈앞에서 변했어. 그는 이것이 틀렸다는 것을 몰랐을까? 나는 그가 이렇게 자라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나는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저 그가 정신을 차리기를 기도하려고 했지만, 그만하면 충분했다.
그것은 내 아이들에게 좋은 예가 아니었고 나에겐 끔찍했다. 매일 마음이 미끄러지고, 밥도 먹을 수 없고, 잠도 잘 수 없었다. 공황 발작이 일어날 것 같았어, 항상 속이 상했어. 그 당시 나는 아직 직장에서 출산 휴가 중이어서 시간이 전부였다.
나한테 물어보면 시간이 너무 많아. 내면을 살필 시간이다. 그가 왜 떠났지, 내가 무슨 짓을 했지? 내가 뭘 어쨌는데? 내가 너무 뚱뚱해졌나? 내가 못생겼나요? 내가 그에게 충분한 섹스를 해주지 않았을까? 그것들은 매일같이 나를 잡아먹는 것들이었다. 나는 왜 가족에서 벗어나 그 사람 외에는 아무도 없는 상태로 버지니아로 이사를 갔을까?
이때부터 나는 PM 알약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떠난 후 매일 밤 PM 약을 먹었다. 난 그냥 잠만 자고 싶었어. 몇 년 동안 누군가의 옆에서 잠을 자고 혼자 자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끔찍했다. 나는 혼자 집에 있는 것이 싫었다. 사실, 나는 조금 무서웠어. 잔디가 자라고, 화장실이 부서지고, 트럭이 18륜차처럼 들리고, 에어컨이 고장 나서 나는 직접 기름을 넣어야 했다. 그것은 그가 떠난 후 처음 일어난 몇 가지 일들에 불과했다. 심하게 재미없었어요. 전에는 이런 일을 처리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는 완전히 얼떨떨했다. 남편이 나를 버릇없게 만들었고, 나는 혼자서 많은 일을 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아이들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찢어졌다. 내 딸은 초반에 매일 밤 아빠를 위해 비아그라가격 울곤 했다. 그러나 그녀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방에서 6살 된 딸이 그녀의 아빠가 돌아오기를 기도하는 것을 들을 것이다.
어느 특별한 날 밤에 엄마가 방에서 나와서 말하길, 엄마, 우리 아빠는 나쁜 동네에 계시기 때문에 아빠를 위해 기도해야 해. 그리고 악마가 아빠로부터 떨어지길 기도해야 해.
내 아들은 그저 화가 났을 뿐이었다.
사람들은 항상 나에게 와서 엉뚱한 말을 하곤 했다.
난 네 기분이 어떤지 알아.
좋아질 것이다.
그건 그냥 사람들이 나한테 했던 말들 중 일부일 뿐이야.
나는 만약 당신이 어떤 사람의 기분을 모르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것을 발견했다. 가끔 가장 좋은 말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일상적인 일을 계속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나는 가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마스크. 나는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매일 소환할 것이다. 나는 몇몇 사람들처럼 될 수 없고, 앉아서 하루 종일 울 수 없었다. 돌봐야 할 아이가 세 명 있었는데, 한 명은 유아였다.
그들은 나에게 의존했다. 그들은 내가 필요했고 나는 그들이 필요했다. 그들은 나를 계속 가게 했다. 우리는 가족까지 전부였다. 내가 즐기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하면서 나날이 좋아졌다. 나는 교회와 다른 활동들을 하느라 바빴다. 나는 아이들을 스포츠에 등록시켰다.
바쁜 일정 때문에 우리는 버림받았다는 사실 말고 다른 것에 마음을 두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그를 미워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나는 그를 사랑했다. 그가 된 사람이 아니라 내가 결혼한 남자. 그가 된 사람은 아이들과 나를 향한 비열하고 무례했으며 단지 다른 존재였다. 그는 그 자신이 아니었다. 내가 그와 이야기할 때마다 타이슨과 12라운드를 싸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와 정상적인 대화를 하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했다.
아침 7시에 전화벨이 울린다.
이봐, 아가씨.
좋은 아침입니다.
어떻게 지내세요?
난 착하고 너 자신이야?
막 출근하는 길에
야, 부탁인데, 출근할 때 전화하지 마. 특히 네가 다른 여자와 막 침대에서 나온 후에 말이야. 나는 너의 아내이다.
니콜이 뭐든. 또 그 구절.
여자는 없다.
적어도 일주일에 3번은 내가 대답을 거절할 때까지 아침 7시에 전화벨이 울리곤 했다.
매일 밤 나는 집에 와서 베개 속으로 소리를 지르곤 했다. 매일 밤 나는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나는 주님을 알고 있었다. 나는 천국에 갈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회사에서 나는 화장실에 가서 울다가 얼굴에 물을 뿌리고 하루의 책임을 재개하곤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남편과 나는 지금 다시 함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나는 묻힌 잃어버린 니콜을 찾았다. 여호와께서 내게 시간을 허락하시어 내게 일을 맡기셨다. 나는 내가 누구고 남을 돕기 위해 견뎌야 했던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한다. 내가 널 위해 겪었다고 사람들에게 말하곤 해. 내가 아니다
그것이 내가 숨쉬 어게인 잡지를 창간한 이유다. 여자들은 이런 가면을 정말 잘 쓰지만, 우리는 속으로는 아프고, 몸부림치고, 울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내 몸부림 속에서 나는 누군가를 만지고,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아는 사람과 동일시할 필요가 있었다. 이 잡지를 성공과 승리에 대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포럼으로 활용함으로써 우리의 임무는 영감 기사를 통해 단 한 명의 여성만을 격려하고 동기부여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분기별 이벤트는 오후, 저녁, 밤 동안만이라도 누군가가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우리의 할 일 리스트에서 벗어나 시간을 벌기 위해. 네가 매를 버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