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1년에 태어난 피카소는 10살 때 그의 일생에 걸맞고 유명한 미술 경력을 시작했다. 그의 탁월함은 그의 아버지의 가르침에 의해 그려진 그림들을 통해 드러나게 되는데, 이것은 스페인 예술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이 스타일은 피카소에게 너무 전통적이고 관습적이었다. 그는 이런 형태의 표현에 의해 제한되는 대신에 새로운 표현 수단을 찾고 싶었다.
20대 초반이 되자 피카소는 지구 톤의 색깔을 자신의 내적 감정을 전달하는 미각으로 바꾸었다. 피카소스 블루 시기는 그의 절친한 친구인 카사게마스의 자살로 촉발된 인생의 우울한 국면이었다. 올드 기타리스트, 더 비극, 라비에는 주로 파란색 음영으로 만들어진 몇 개의 시적 이미지들이 있다. 이 짧은 장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병들고 수척하여, 당시 피카소가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좌절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1905년경 순차적으로 접어든 장미 시기는 피카소스의 베이지 색조와 장미 색조를 통해 피카소스의 삶에 대한 전망이 밝아지는 것을 보여주었다. 살림반크와 아크로벳, 영 할레퀸은 피카소가 처음으로 광대들과 레플리카사이트 서커스 공연자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장미시대의 두 작품이다. 피카소스의 재정적인 개선과 성공적인 애정 관계는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분홍색이고 매력적인 피부톤에 큰 역할을 했다.
1907년까지 파블로 피카소와 그의 친구 조르주 브라크는 우리가 입체파라고 알고 있는 시대를 시작하기 위해 협력했다. 다시 한번 피카소는 새로운 형태의 표현을 원했고 밝은 색상과 딱딱한 테두리 형태, 기하학적 용어로 표시된 평평한 공간을 사용하여 급진적으로 창의적인 형태의 예술 작품을 창조했다. 피카소스 자기 초상화는 입체주의 초기에 행해진 예술작품의 한 예로서 그 기간 동안 다른 작품들이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큐비즘은 분석 큐비즘과 합성 큐비즘으로 발전했다. 분석적 입체주의는 피카소와 브라키스의 그림에서 밝은 색상을 제거하여 주된 초점이 산만한 페인트 색조와는 반대로 구조에 맞춰지도록 하는 것을 포함한다. 관점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이 시기에 적용되었다. 그래서 피카소와 브라크는 여러 가지 다른 관점이나 각도에서 보고 있는 물체를 통합한 그림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합성 큐비즘은 평평하고 밝은 무늬와 함께 더 크고 더 대표적인 형태로 구성되었다. 합성기에 걸쳐 피카소와 브라크는 실제 기름보, 신문 인쇄물 또는 우표와 같은 실제 무생물체들을 캔버스에 통합함으로써 산발적으로 실험을 했다.
1930년대 동안 피카소는 뛰어난 예술가로 존경받았고 운 좋게 그의 일생 동안 성공을 이루었다. 그의 그림들은 현재 전투적이고 정치적이었으며, 특히 제1차 세계 대전과 스페인 내전의 사실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그는 또한 초현실주의 운동과 연결되기는 했지만, 어떤 형식적인 제도에서도 이런 종류의 예술을 연구하기를 거부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 이어 피카소스의 그림들은 정치에서 온화한 것으로 변화시켰다. 피카소는 생애 마지막 해를 그림에 집중하며 보냈고, 결국 347개의 스케치를 완성했다. 건강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피카소는 말년에 많은 그림을 그렸다. 1973년 4월 8일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